패스트푸드가 밥보다 좋아요? 키 안커도 좋아요?
정우석
일반
0
8511
2010.05.05 09:09
[중앙일보 황운하] 초등학교 3학년인 이강우(가명·남·서울 수유동)군. 최근 2년 동안 매년 10㎏씩 체중이 불어 엄마와 병원을 찾았다가 결국 '대사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키는 138㎝로 또래보다 조금 크지만 체중은 54㎏으로 10㎏ 이상 더 나가는 비만이다. 허리둘레가 91㎝로 웬만한 어른을 앞질렀고, 체질량지수(체중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도 28.4로 평균을 훌쩍 넘겼다. 혈액검사에선 중성지방 수치가 161㎎/dL로 높고, 고밀도(HDL) 콜레스테롤은 39㎎/dL에 그쳤다. 운동량 '제로'에 아침을 거르고 저녁은 학원을 전전하며 패스트푸드로 때우다시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강우는 이대로 성인이 되면 20, 30대에 당뇨병·심장혈관질환 등 성인병이 시작된다.
부모보다 먼저 고혈압·당뇨 올 수도
'조용한 살인자'. 건강을 서서히 옥좨 오는 '대사증후군'의 어두운 별칭이다. 저승사자 같은 대사증후군이 우리 아이들 곁에 서 있다. 잘못된 식습관·운동부족 등으로 수년 전부터 대사증후군의 늪에 빠진 소아청소년이 점차 늘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소아청소년들의 대사증후군 실태를 들춰봤다.
대사증후군은 복부비만, 고혈압, 공복 시 높은 혈당, 높은 중성지방혈증, 낮은 고밀도(HDL) 콜레스테롤 수치 중 세 가지 이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대사증후군은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간질환·심장혈관질환 등 성인병을 부르고 결국 사망위험을 높인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소아청소년과 박미정 교수팀이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국의 만1019세 소아청소년 4164명의 건강상태를 분석했다.
그 결과 1998년 대사증후군 유병률은 남녀 모두 5.2%였다. 하지만 2001년 6.7%(남 9.7%, 여 3.5%), 2005년 7.4%(남 11.2%, 여 3.4%)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남아의 증가가 확연하다.
대사증후군의 시작을 알리는 비만 유병률도 함께 늘었다. '2008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2008년 만2~18세의 유병률은 10.6%(남아 13.7%, 여아 7.5%)로 10년 전(5.58%)보다 두 배로 뛰었다.
어릴 때 대사증후군, 커서도 안 없어져
대사증후군은 젖먹이 때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순천향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이동환 교수는 “대사증후군은 한두 살부터도 나타난다”며 “뚱뚱한 아기들은 혈액검사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온다. 모유보다 분유를 많이 먹는 아이들에게서 많이 관찰된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기 대사증후군의 원인은 성인과 비슷하다. 건강을 외면한 나쁜 생활습관 탓이다.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오상우 교수는 “패스트푸드·기름진 음식 등 높은 열량섭취, 스트레스 등이 아이들을 대사증후군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운동은 언감생심인 현실도 중요한 원인이다.
소아청소년기에 발생한 대사증후군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성인이 되면 사라질까? 아니다. 개선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성장기부터 평생 이어진다.
사춘기를 앞당겨 성장판을 일찍 닫게 해 성장을 막는다. 비만인 여학생은 에스트로겐이 과다 분비돼 월경이 빨리 시작되고 불임을 겪을 수 있다.
대사증후군의 시작을 알리는 소아청소년기의 비만은 70%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진다. 특히 비만세포의 수와 크기를 동시에 늘려 고도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동환 교수는 “대사증후군이 소아청소년기부터 시작되면 부모보다 먼저 20, 30대에 성인병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사증후군이 중년에 시작되면 성인병으로 인한 합병증은 60대 이후에 나타난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기부터 대사증후군인 아이는 60년 이상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미국 신시내티 소아병원이 소아청소년 800여 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대사증후군에 노출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중년에 당뇨병과 심장혈관질환의 발병위험이 각각 6.5배, 13배 높았다. 대사증후군이 소아청소년기에 시작되면 인생의 대부분을 '시한폭탄'을 껴안고 사는 셈이다.
20세 전 관리하면 건강 되돌릴 수 있어
다행히 소아청소년 대사증후군은 조기에 발견해 개선하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인제대 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20세 이전에 식사요법과 운동을 통해 관리하면 대사증후군에 따른 동맥경화와 지방간 등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 아이가 대사증후군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장기에 있는 소아청소년의 대사증후군을 정량화해 진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몇 가지 관찰을 통해 예측할 수 있다.
마른 체격이었는데 갑자기 체중이 불면 대사증후군을 의심한다. 허리둘레가 엉덩이둘레에 비해 큰 '올챙이 배'가 눈에 띄는 변화다.
부모가 비만이거나 고지혈증·고혈압·당뇨병이 있는 경우 아이가 대사증후군일 확률이 높다. 아이의 식사습관이 불규칙하고 운동량이 적다면 검사가 필요하다.
대사증후군 여부를 정확하게 측정하려면 미국 콜레스테롤 교육프로그램의 진단 기준을 이용한다. 대사증후군과 관련된 아이의 다섯 가지 신체 정보를 대입해 세 가지 이상이 해당하면 개선이 필요하다. <표 참조>
황운하 기자